뚠띠뚠띠의 블로그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시인들을
소개해드리는 시리즈포스팅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11번째 포스팅이네요.
이 포스팅들을 보시면서 우리나라 시인에 대해
많은 이해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또 교과서에서만 보고 기억에서 잊혀져버린
시인들의 대표작품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상기해주면 좋겠습니다.
생각보다 우리나라에는 아름다운 시를 지으신
시인분들이 참 많으니까요.
이전편을 통해서 박목월 서정주, 백석, 정지용, 김수영, 한용운, 조지훈 시인에 대해
소개해보았으니 필요하시면 링크를 통해 확인해주세요.
https://gguldaeri.tistory.com/3 박목월 시인 소개 및 대표작
https://gguldaeri.tistory.com/4 서정주 시인 소개 및 대표작
https://gguldaeri.tistory.com/5 백석 시인 소개 및 대표작
https://gguldaeri.tistory.com/6 정지용 시인 소개 및 대표작
https://gguldaeri.tistory.com/7 김수영 시인 소개 및 대표작
https://gguldaeri.tistory.com/8 한용운 시인 소개 및 대표작
이번에는 성북동비둘기로 유명한 김광훈 시인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1. 시인소개
1905년 함경북도 경성군 어랑면 송신리#에서 김인준(金寅濬)의 아들로 태어났다. 경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다가 중퇴하고 중동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33년 4월부터 모교인 중동학교의 영어교사가 되어 교사로 있으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수업시간 등에 일제의 민족차별정책, 조선어말살정책, 동아일보(東亞日報)·조선일보(朝鮮日報) 폐간 등 언론탄압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1941년 2월 21일, 이로 인하여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잔혹한 고문을 당하였고 1942년 9월에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8.15 광복 후 미군정청에서 일하였다. 그러다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이승만 정권 초기 공보비서관을 지냈다. 이후 경희대학교 교수로 있었다. 그러다가 1977년에 사망하였다.
김광섭 시인 사후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77년 건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그가 지은 시로는 1966년 지은 '성북동 비둘기'가 대표작이다. 현대 문명의 삭막함을 노래한 시로 알려져 있다. 이 시는 김광섭 개인의 경험과도 관련이 있는데 시를 쓰기 전인 1961년부터 김광섭은 성북동에서 거주하고 있었고, 당시에는 성북동에 채석장이 있었다. 성북동이 현대의 부촌으로 바뀐 것은 1970년대 후반 이후이다.
그의 시 '저녁에'는 1970년 김환기 화백의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와 1980년 유심초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곡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2. 대표작품
성북동(城北洞) 비둘기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예전에는 사람들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쫒기는 새가 되었다.
작품해석
이 詩의 발표 연대는 1968년 11월 「월간문학」으로 기계문명 속에서 자연미와 평화를 발견할 수 없는 삭막한 문명세계의 삶을 살아가는 고뇌를 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채석장 포성도 멈추고 금방 따낸 돌 온기도 없이 비둘기가 날아다니던 하늘에 높은 아파트와 빌딩들이 들어섰을 뿐이다.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의 새, 평화의 새라는 비둘기의 상징성도 콘크리트 벽에 희석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현대인에게 비둘기는 도심 속에 사육되는 새로만 인식되고 있다. 이 시가 발표될 무렵의 성북동의 모습에서 찾아보았던 메마른 골짜기도, 축복의 메시지를 전하던 그 모습도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현대인이 자연의 파괴로부터 바라보는 극한 상황의 절망감이나 고독은 비둘기처럼 떠돌며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화하고 발전되어도 자연 속에 동화되어 살았던 삶의 향수는 지울 수가 없을 것이다. 성북동 비둘기는 비둘기라는 상징의 새를 통해 가슴에 금이 간 자연의 모습을 되돌려 놓지 못한 아픔을 이야기하지만, 먼 미래의 세상이 모두 성북동 하늘 아래를 떠돌고 있는 새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도 간직하고 있다. 전국 어디를 가나 이제 성북동 비둘기처럼 변화되어 있는 자연의 모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높은 아파트 숲과 질주하는 자동차의 굉음소리에 사람의 마음도 그만큼 멀리 자연의 품에서 벗어나 있다. 옛 향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성북동 비둘기는 바로 자기 자신의 그리움을 찾아가는 모습으로 비추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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