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유명 소설가 6번째 - 염상섭 작가
여러분 안녕하세요. 뚠띠뚠띠입니다.
우리나라의 멋진 소설가들을 소개하는 시리즈입니다.
혹시 전편을 아직 못보셨다면 링크를 타고 찾아가서
보시기 바랍니다.
https://gguldaeri.tistory.com/10 박경리 작가 소개와 대표작품
https://gguldaeri.tistory.com/11 황순원 작가 소개와 대표작품
https://gguldaeri.tistory.com/12 김유정 작가 소개와 대표작품
https://gguldaeri.tistory.com/13 이효석 작가 소개와 대표작품
https://gguldaeri.tistory.com/14 최인훈 작가 소개와 대표작품
이번에는 염상섭 작가님에 대해 소개할겁니다 !
삼대라는 장편 연작소설로 유명한 소설가 입니다.
생각처럼 쉽게 읽혀지는 소설은 아니지만, 굉장히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시간이 나신다면 한번 처음부터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럼 이제 염상섭 작가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작가소개
대한민국의 소설가. 본관은 파주(坡州), 본명은 염상섭(廉尙燮), 호는 횡보(橫步). 횡보란 호를 가지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썰이 있다. 첫째는 항상 술에 취해 횡으로 걸어다녔기 때문이고, 둘째는 괴이한 행동들을 많이 해서 횡보라는 호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2.작가의 생애
1897년 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체부동 인근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 염인식(廉仁湜)은 중추원 의관[2]을 지냈고, 아버지 염규환(廉圭桓)은 구한말 군수였다.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수료한 후 1912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염상섭은 서울의 개명한, 즉 신식 문물에 밝은 집안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그 당시엔 드물게도 조혼[3]을 하지 않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결국 30대까지 총각이었다. 지금도 30대 중후반 넘어서까지 결혼을 못하면 그리 좋은 눈으로는 안 보는데, 그 때 시각에서 보자면 천연기념물에 가깝다.
교토 제2부속 중학교를 졸업하고 게이오기주쿠대학 문과에 입학했으나, 1918년 병으로 자퇴한다.
1919년 2월 8일, 도쿄 조선 유학생 학우회가 주도한 도쿄 2.8 독립 선언 사건이 있은 뒤, 혼자서 오사카 텐노지 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한다. 계획적으로 진행됐던 도쿄 독립선언서와는 달리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발표한다. 물론 발표할 때에는 오사카에 거주하는 노동자와 유학생이 모였었다. 특이하게 독립선언 명의를 재오사카 한국노동자대표로 했다.
결국 일본제국 경찰에 잡히긴 하는데, 그 당시엔 독립선언을 불법으로 할 법규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쓰레기(즉, 전단지) 불법투기를 이유로 체포되었다. 이후 재판을 받았는데, 변호사를 대지 않고 직접 자기 변론을 하며 뛰어난 언변 실력을 보여 일본 판사가 염상섭을 꽤 귀여워했다고 한다. 재판정에 선 염상섭은 당시 일본치하에서 조선의 비참함과 현실을 호소했는데 방청객과 판사가 꽤나 감격했고, 이때 판사가 염상섭에게 변호사가 되기를 권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또한 일본 간수도 그를 귀여워해서, 출옥할 때 간수와 기념사진도 찍었다고 한다. 그 기록은 일본 오사카 아사히 신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후, 그런 일이 이슈가 되어 귀국하고 동아일보 1기 특채 정치부 기자로 일한다. 월급도 후했고 전용 인력거까지 제공받았다고 한다. 그 후 동아일보 기자와 작가 생활을 하다가 일제 말엽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절필하고 만주로 건너가 사업가로 성공한다.
광복 후 만주의 재산을 정리해서 돌아왔는데, 당시 문학 단체에서 일한 경력으로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후 6.25 전쟁이 터지자 피난 생활을 하였다. 이 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취우>. 말 그대로 전쟁도 한때의 소나기라는 이야기. 전쟁 자체의 묘사보다 점령지에서의 일상 생활을 밀도 있게 그렸다. 6.25 전쟁 당시에는 대한민국 해군 정훈병과 소령으로 임관하고 중령으로 전역하였다.
전후 1954년에는 예술원회원에 선임되고,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장을 역임하였다.
1963년 3월 14일 아침 성북동 자택에서 직장암으로 타계했다. 묘소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천주교 묘지에 있다. 종로 교보문고 광화문점 앞에는 그를 기념하는 등신대 동상이 있다. 본래 이 동상은 종묘 앞에 위치해 있었으나 종묘 성역화 사업으로 삼청공원에 이전하였다가, 2014년 4월 1일에 다시 이전하였다.
3. 작품의 특징
한국 리얼리즘 소설의 성좌로 불릴 정도로, 당대 시대상을 이 작가만큼 세밀하게 다룬 작가는 드물다. 비견될 수 있는 사람은 박태원 정도밖에 없다. 아무튼 이후 황석영으로 이어질 리얼리즘 소설의 한 계열을 열어젖힌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심지어 지금도 평단의 보수적 인사가 현실 천착 소설 부족을 평할 때 그렇지 않은 전범으로 염두에 두는 것이 대개 이 작가이다.
또한 드물게도 서울 출신이어서, 염상섭의 작품에는 당대의 표준어가 잘나타나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은 언어적 측면에서도 가치가 높다.
표본실의 청개구리라는 자연주의 작품으로 문단에 데뷔. 하지만 이 작품은 청개구리 해부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집필한 것이라 고증이 어긋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청개구리 해부는 서술자의 상태를 묘사하기 위한 장면이므로 크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
염상섭의 대표작인 장편소설 삼대는 한국 현대 소설 중에서 최초의 가정 소설이라는 데서 의의가 있다. 고전소설로 가면 삼대와 구성이 같은 가정 소설이 완월회맹연이나 명주보월빙 등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지금으로 치면 막장 드라마급이라는 것이 문제이지만.
또한, 광복 이후에는 광복의 기쁨과 감격을 그린 소설 해방의 아들을 발표하였으며 영어가 득세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양과자갑, 인공치하 서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취우 3편 연작이 있다. 그리고 1960년대에는 서민들에게서 일본의 존재를 대신한 미국을 나타낸 얼룩진 시대 풍경이라는 작품을 썼다.
또한, 현실을 상당히 잘 담아내는 동시에 지나치게 어두운 작품들을 많이 썼다. 밝은 분위기의 작품은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이다. 염상섭의 작품 대부분이 한없이 어둡기만 한 이유에는 그가 특정한 독자층을 노리고 그런 소설을 썼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아무튼 문학계에서는 여러 가지로 높이 평가받고 있지만 지나치게 어둡고 내용도 어렵다는 특징 때문에 그를 싫어하는 독자들도 여럿 있다.
4. 염상섭 작가의 대표작
1. 삼대: 1947년에야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2.만세전 : 1924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3.두 파산
4.표본실의 청개구리: 1924년 출간된 <견우화>라는 단편집에 수록되어 있다. 단편집을 구성하는 세 작품 <암야>, <표본실의 청개구리>, <제야>는 삼부작으로 엮여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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